Intro
오늘은 난이도 높은 크툴루의 부름 시나리오를 마스터링하는 방법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저의 대답은 사실
쫄지 말고 그냥 하면 된다
입니다...
하다 보면 다 됩니다.
그렇지만 현재 크툴루의 부름 시나리오들을 살펴보면, 숫자가 많은 만큼 스타일과 유형, 난이도 간극이 큽니다. 공식 시나리오 혹은 공식 시나리오풍의 서술방식을 채택한 시나리오, 선택지가 있는 텍스트 어드벤처에 가까운 시나리오, 실제 시간으로 30분 내에 끝낼 수 있는 시나리오, 1년을 해야 끝나는 캠페인, 처음부터 끝까지 좁은 방에서 진행되는 시나리오, 도시 전체를 돌아다니는 시나리오 등... 이 중 평소에 하지 않던 스타일을 하려면 완전히 다른 준비가 필요하게 됩니다.
그래서, 생소한 스타일이 좀 막막하신 분들이 있다면 도움이 되실까 해서 이 글을 작성해보았습니다.
마스터링 난이도가 높은 시나리오의 정의
우선 정의부터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마스터링 난이도가 높은 시나리오란 :
-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 무대가 되는 시공간이 넓다.
- 전투와 추격, 주문 사용 등 사용하는 룰의 범위가 넓다
와 같은 특징을 가진 시나리오입니다.
반대로 쉬운 시나리오는 '선형적으로 진행되고, 무대가 좁으며, 제한된 룰만 사용하는 시나리오'가 되겠네요.
* 공식 시나리오로 예를 들면 간편 입문 가이드나 어둠으로 가는 문에 실린 시나리오가 비교적 쉽고, 이름 없는 공포들에 실린 시나리오는 다소 어렵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항목별 대응법
1. 선형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어떤 시나리오는 서술 순서와 진행 순서가 거의 같지만, 대부분의 시나리오는 순서가 크게 바뀔 수 있습니다. 장면이 순차적으로 이어지지 않고, 탐사자들이 여러 장소로 큰 제약 없이 움직일 수 있습니다. 탐사자들이 한참 뒤에 시나리오 초반에서 놓친 내용을 찾으러 돌아갈 수도 있죠. 시나리오 자체에 루프물 같은 요소가 들어 있는 특수한 시나리오도 있고, 아예 샌드박스형으로 탐사자들을 풀어놓는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예1: 시나리오는 술집-오두막-교회 장면으로 서술되어 있는 경우.
탐사자들이 술집 장면에서 의뢰를 받은 후, 수상한 오두막으로 찾아갔다가 다시 의뢰에 대해 확인하러 술집으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교회 화재'라는 사건이 발생해서 교회 장면이 아예 사라져 버릴 수도 있습니다.
예2: 시나리오에는 탐사자들이 찾아볼 수 있는 단서의 목록이나, 조사해볼 수 있는 NPC 목록만 적혀 있습니다. 탐사자들은 첫 장면에서 얻는 단서를 토대로 이 목록을 자유롭게 조사하고 다닙니다.
Tip
-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 읽으면서 구조를 정리해 봅니다. 종이 한 장 안에 손으로 쓰면 더 좋아요.특히, 어떤 단서를 필수적으로 얻어야 플레이어들이 마지막 장면까지 이어갈 수 있는지 생각하면서 정리합니다. 그 단서를 명백한 단서로 처리합니다.
- 시나리오를 인쇄했다면 플래그를 붙여서 참고할 부분을 찾기 쉽게 표시해주세요. 구글 문서나 pdf 파일이면 책갈피를 넣어 주세요.
2. 무대가 되는 시공간이 넓다.
무대가 되는 시공간이 상당히 크게 잡혀 있으면 체감 난이도가 높아집니다.
입문 시나리오로 한동안 유행했던 '독스프'는 시간과 공간에 명확한 제한이 있습니다. 수호자는 이 공간과 시간 속에 있는 내용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탐사자가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은 몇 가지 없죠. 그래서 수호자 입장에서는 편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무대가 되는 시공간이 넓으면 정확히 반대의 현상이 일어납니다.
1) 수호자가 무대를 파악하기 어렵다.
시나리오가 진행되는 시공간에 대해 수호자 입장에서 어느 정도는 파악해야 진행이 가능합니다. 잘 모르는 시공간은 해상도가 낮은 이미지처럼 깊이가 없고 모호해집니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도시 전체를 배경으로, 혹은 국가 전체를 배경으로 하는 시나리오라도 크게 문제될 건 없습니다. 우리가 이야기 속 현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잘 모르는 시공간에서 이야기가 진행될 때입니다.
중학교 졸업한지 20년 된 사람이 현재 중학교 배경으로 창작을 하거나 시나리오를 진행하려고 하면 턱턱 막히는 부분이 있을 거고, 독일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1920년대 독일 배경 시나리오를 하려고 하면 또 막막해질 겁니다.
으음... 이 때쯤 우편이 상용화되었던가? 전화, 라디오, tv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도 되나? 인력거 한 번 타는데 가격은 얼마쯤 하지? 꼭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세계의 해상도를 높일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있는데, 무대가 넓어질수록 이런 정보를 숙지하기가 어렵습니다.
Tip
- 탐사자 핸드북/ 수호자 룰북 부록은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에 아주 유용한 자료입니다. 1920년대를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라면 꼭 활용해봅니다.
- 미리 자료조사를 해서 정리해두는 것도 좋습니다. 필요한 배경지식을 정리해서 본인도 보고, 플레이어들에게도 공유하면 좋아요. 특히 단편이 아니라 중편, 장편인 경우에는요. 예시
- 정 모르겠고 귀찮으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그때그때 검색하거나 지어냅니다. 어차피 시나리오 속 세계는 크툴루가 있는 평행세계입니다. 그 세계 내에서만 앞뒤가 맞으면 되겠습니다.
2) 탐사자들이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한다.
사실 이것은 언제나 일어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무대가 넓은 경우에는 탐사자가 제안할 수 있는 행동 범위도 넓으니, 더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죠. 시나리오에도 없고, 수호자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의뢰인이 수상하니, 제 탐사자의 경찰 인맥을 활용해 의뢰인의 범죄 기록을 알아봅니다.'
'저 사람의 차를 사진으로 찍었으니, 번호판을 식별해볼래요.'
'도서관에 가서 여기에 나온 단서에 대해 알아봅니다.'
'바텐더를 꼬셔서 정보를 캐내 봐요. 바텐더 이름은 뭐죠?'
'저 npc의 컴퓨터에 백도어를 심어서 정보를 캐내볼게요.'
Tip
- 가능하면 플레이어의 제안을 수용하면서, 수호자가 알고 있는 내용을 토대로 가장 그럴듯해 보이는 내용으로 전개합니다. 정 안 될 것 같으면 솔직하게 이야기합니다.
도서관이 없을 법한 마을이라면 없다고 대답하고, 있을 법하면 도서관에서 자료조사를 하게 해 줍니다. 의뢰인의 전과 기록이 남아 있을 것 같다면 그렇게 이야기해 줍니다. 만약 전혀 중요치 않은 내용에 플레이어들이 꽂혀 있다면 솔직하게 말해 줍니다. 바텐더의 이름을 지어냅니다. 컴퓨터 사용으로 백도어 심는 데 성공했는지 보고, 성공하면 있을 법한 정보를 줍니다. 만약 강행 실패하면, 남의 컴퓨터를 만지는 모습을 컴퓨터 주인에게 들켜 의심을 사겠죠. 다른 데서 플레이어들이 놓쳤던 정보를 슬쩍 끼워줘도 좋습니다.
- 이건 사실 수호자 룰북 197페이지에 더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3. 전투나 추격, 주문 사용 등 사용하는 룰의 범위가 넓다
전투 룰은 그나마 많이 쓰이는 편입니다. 익숙하신 분들도 많겠죠. 하지만 참여하는 npc가 많거나 주문을 쓰는 npc가 있거나 총기 연사, 명중 부위 룰 같은 자잘한 요소들이 많으면 부드럽게 진행하기 어렵기도 합니다.
또, 추격, 신화서 연구하기, 주문 사용, 탐사자 성장 등 평소에 써볼 일이 별로 없었던 룰을 활용해야 하는 경우 시나리오가 어렵게 느껴지게 됩니다.
Tip
- 전투 시뮬레이션을 한번 해 보세요. 전투 룰을 익히고 npc 데이터를 예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전투가 발생할 만한 부분이 있다면, 민첩성 순서대로 이 장면에 등장하는 탐사자와 npc들을 배열합니다. 근접전, 총기 실력, 체구, 체력, 마력, 정신력(주문 관련) 등 전투에 관련된 수치를 미리 메모합니다. 순서대로 주사위를 굴리며 행동합니다. npc가 쓸 법한 주문이 있다면 미리 효과를 메모해 둡니다.
* 3턴 정도 동일한 패턴의 전투가 진행되면 살짝 루즈해집니다. 그런 부분을 생각해 전투 내용에 변주를 주거나 마무리를 하도록 합시다.
- 자주 안 쓰이는 룰은 그때그때 찾아가며 해도 괜찮습니다. 신화서 연구하기, 주문 사용 같은 룰은 아무리 룰북 자주 읽어봐야 안 쓰면 잊어버립니다. 반대로 필요해서 몇 번 찾아보다 보면 익숙해지게 되어 있습니다.
- 시나리오의 중심 기믹 중 특정 룰이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면 미리 룰북의 해당 파트를 읽어주세요.
Outro
저도 마스터링을 잘하지는 않지만...그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겠지 하면서 뻔뻔하게 써봤습니다.
혹시 여러분만의 팁들이 있다면 많이 공유해주세요! 미리 감사합니다.
'trp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종시 오프라인 TRPG 세션 (3) | 2023.03.21 |
---|---|
[베를린] 악마는 파리를 먹는다 시나리오 마스터링 후기 (0) | 2023.02.05 |
내향인을 위한 TRPG 마스터링 팁 (0) | 2023.01.29 |
베를린: 사악한 도시 / 유용한 배경 지식 한 스푼 (0) | 2022.12.24 |
[시나리오집 인포] 우리는 금이 간 유리 위를 걷고 있었다 (1) | 2019.02.02 |